방금 돌아와 후기를 남깁니다. 너무 일찍돌아와버린 부끄러움과, 시위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받은 감동, 눈앞에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던 끔찍한 광경들 때문에 손이 아직도 떨립니다.
1. 6월 1일 19시 촛불문화제
저녁 7시부터 시청앞 광장에서 늘 그랬듯 촛불문화제가 있었다. romio와 약간 늦게 도착한 나는 자리 잡기가 이미 늦었다는 걸 알았다. 유일한 빈자리였던 시끄러운 스피커 앞에 앉아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자유발언이 이어졌는데, 의료봉사단 한 분이 나와 저런 분들도 계시구나 싶었고, 여고생 3학년의 말을 들으며 부끄러웠다. 말미에 사회자는 국회의원이 여러분 오셨다면서 자유발언을 들을 것인지를 집회참가자에게 물었다. 나는 사람들과 힘차게 "아니오!"를 외쳤고, 결국 그들은 마이크를 잡지 못했다. 무슨 낯짝으로. 통합민주당은 어디서 뭘 하다 이제 나타난건지. 40분쯤 지났을까, 원래는 8시 반에야 끝날 촛불문화제를 조기에 마친다는 공지가 나왔고, 곧장 청와대로 달려가자는 확성기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시청에서 광화문 이순신 동상에 이르는 길을 잰걸음으로 갔다. 그런데, 무대에서 "어제 여고생이 시위과정에서 크게 다친 사실을 기억하실겁니다. 혹시 동영상 가지신 분 계시면 무대 위로 가져와주십시오, MBC 기자분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는 방송이 나왔다. 나와 시민들은 MBC 기자를 향해 환호성과 박수를 보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지금 시민 한분이 동영상을 가지고 올라오셨습니다."하는 방송이 흘렀고, 나는 또 박수를 쳐댔다.
2. 6월 1일 20시무렵 광화문 시위 시작
오늘은 기필코 청와대 앞까지 가겠다는 수만명 시위대의 각오는 강했다. 어느때보다 시위대의 인파가 많았고, 촛불문화제를 조기에 마친 탓에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으로 향했다. 이순신 동상, 거기에 전경버스가 가득 차 길을 막고 있었다. 토요일 청와대 옆문쪽까지 진출한 시위대 탓에 오늘은 버스로 아예 길을 막아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시위 최전선인 전경버스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때부터 목이 터져라 외쳤는데, 외친 구호는 "이명박은 물러가라!" "쥐새끼는 물러가라!" "비폭력! 비폭력!" "폭력경찰 물러나라!" "우리의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우리 앞길을 막지마라!" "불법주차 견인하자!" "협상무효 고시철폐!" "평화시위 보장하라!" 였다. 이내 경찰측의 방송이 흘러나왔다.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은 합법일 때 더 의미가 어쩌고저쩌고... 불법집회를 해산이 어쩌고... 공권력이 어쩌고 저쩌고" 였다. 내가 제일 앞에 있으면서도 듣지 못한 것은 사람들이 방송이 나오자마자 "입닥쳐!" "노래해!"를 연호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소릴 뇌까리는 경찰쪽으로 물병을 던졌다. 전경버스들 틈 사이로 집결해있는 수많은 전경들과 살수차가 보였다.
그 무렵 갑자기 환호성이 일었다. 쳐다보니 강기갑 의원이 오시고 계셨다. 몇일째 단식농성중이시라 몸도 안좋으실텐데, "국민이 이깁니다"라는 긴 현수막과 함께 민노당 분들과 오신 것이었다. 내가 조금 뒤로 물러비껴앉았고 그분들은 전경버스 바로 앞에 앉았다. 번뜩 드는 생각이 '국회의원이 제일 앞에 있는데, 우리 시위대를 어찌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아무튼 참으로 힘이 되었다.
<연좌한 강기갑의원>
3. 6월 1일 21시무렵 멋진 기자분들, 진중권 교수
청와대로 우회해서 갈 수 있는 모든 길은 전경버스로 막혔고, 시위대는 이리저리 돌다 결국 원래 제자리인 광화문 쪽으로 집결하였다. 지루한 구호외침이 들렸다. 그런데,
<전경버스 위에 올라가 전경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취재하는 기자분들>
세상에나 기자분들이 전경차 위에 올라가서 취재를 하는 것이었다. 경찰측에서는 거듭 기자들에게 솔선수범을 보이라며 경고방송을 했지만 되레 시민들에게 욕설을 벌 뿐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시위 현장을 생중계 방송하시는 진중권 교수>
존경해마지않는 진중권 교수님이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오셔서 중계하시는 것이었다. TV나 지면에서 뵌 것 보다 훨씬 야위셨다. 나는 뜨거운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나는 비로소, 이제 해볼만하겠구나, 언론이 이렇게 지켜보는데, 행정부도 생각이 있으면 강제진압은 어렵겠지 싶었다. 그때, 갑자기 전경차 위에서 외마디 고함이 들렸다. 언뜻 보니 기자들끼리 싸움이라도 난 것 같았다. 한 기자가 시위대를 향해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한 기자를 가리켰다. 이내 시위대가 외치는 구호, "조중동은 내려와라! 조중동은 내려와라!". 조선일보 기자로 보이는 그 기자에게 시민들은 레이저 빔을 쏴댔다. 결국 그들은 내려갔고, 버스 위에 있던 기자들은 손을 들며 시위대를 향해 환호성을 질렀다.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4. 6월 1일 22시 감동과 분노
밤 10시쯤, 버스 너머에서 뭔가 기계음이 들리더니 전경버스 위로 살수차 분사기가 올라왔다. 시민들은 놀랐다. 어떤 대학생이 우비를 나눠주고 있기에 나도 얼른 받아챙겨서 입었다.
<뭐 또 하나 얻었다고 사진을 찍었다.>
곧 큰 천막 같은 것을 머리 위로 얹고, 시민들은 버티자! 버티자! 를 외쳤다. 그런데, 청와대로 가는 우리의 발걸음을 막고 있는 버스들을 하나둘씩 시민들이 끌어내기 시작했다. 누군가 줄다리기 하는 밧줄 같은 것을 가져왔는데, 전경버스를 묶어 서로 당기자고 한 것이다. 지루하고도 힘겨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전경들은 버스에 가득 타서 버스가 끌려가는 것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수십, 언뜻 백명에 가까운 사람과 만명이 넘는 사람들의 응원소리에 버스들은 하나둘씩 움직이기 시작했고, 두시간 가까이 계속된 줄다리기 끝에 전경버스 네 대를 끌어내었다. 버스를 끌어낸 그 뒤로, 살벌한 표정을 지은 전경들이 쫙 깔려있었다. 나는 손이 까지도록 줄을 잡아당겼고, 저녁도 못먹은 터라 배도 고팠으며 매캐한 버스 연기때문에 목도 답답했다. 그 순간,
<한 시민이 쥐어준 주먹밥>
누군가가 주먹법과 물 한 컵을 쥐어주었다. 우걱우걱 씹어먹으며 구호를 외쳤다. 같이 동참하는 사람을 보면서 곧 터질것 같은 분노를 주먹밥과 같이 삼켰다.
험악해진 분위기 속에 산발적인 구호는 더 격해졌다. 그 때, 시민들을 향한 전경버스의 뒷꽁무니에서 매캐한 흰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곧 눈앞이 잘 보이지 않고 숨이 턱 막히기 시작했다. 최루탄을 못쓰니까 기어를 중립으로 해놓고 공회전을 해서 매연을 뿜는 것 같았다. 사람들 입에서는 끊임없이 욕설이 튀어나왔고, "폭력경찰 물러가라!" "평화시위 보장하라!"는 구호는 커져만 갔다.

<숨막히는 연기에 모두들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좌측에 시위대를 향한 조명탑이 보인다.>
곧 조명탑이 올라와 시위대를 비췄고, 시위 경험자로 보이는 한 청년이 "조명탑이 비춘다는 것은 곧 진압이 있거나 물을 뿌린다는 얘깁니다. 모두 조심하세요! 조심하세요!" 하고 외쳤다. 우비를 다시 동여매려는데, 70도 훨씬 넘어보이시는 할아버님이 그 우비를 좀 달라고 하셨다. 어제 시위에서 물대포를 맞으셨다고 하시면서 피하는 요령을 말씀해주셨다. 그런데 우비를 챙겨가신 할아버지는 부정확한 발음으로 나에게 황당한 말씀을 하셨다.
"나는 오늘 죽을거야. 나는 어짜피 지금 지병이 있어서 오래 살지도 못해. 지금은 누구 하나 희생되어야 이길 수 있어. 항상 그래왔거든.". 나는 "그런 말씀마십시오. 오늘은 물대포 안맞으시게 조심하십시오." 했다. 하지만 그 할아버지는 "아니야. 어짜피 죽을 거... 젊은 사람, 행복하게 잘 사시오" 하시고는 홀연히 시위대 앞쪽으로 가셨다.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5. 6월 2일 1시 강제진압 시작
우리가 끌어낸 전경버스 틈으로 갑자기 전경들이 들이닥쳤다. 순간 사람들은 아우성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이내 시작된 대치상황, 사람들은 폭력경찰 물러가라, 경찰 비키고 이명박 나와라를 외쳤다. 갑자기 뒤에서 고함이 쳤다. "뒤쪽에 경찰특공대 옵니다! 뒤쪽에 경찰특공대 옵니다! 우리 포위됩니다! 뒤로 오세요!". 오직 청와대에만 시선을 오로지하던 우리 뒤로 전경들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세종로 방향에서 온건지, 어디서 온건지 하여간 갑자치 들이닥친 것이다. 조명탑은 더욱 우리를 눈부시게 비추었다. 마지막인듯한 경고방송이 들렸다. "전 대원들은 집결하십시오. 시위대는 불법집회를 중단하고 즉각 해산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공권력을 동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는 매캐한 버스매연과 함께 앞뒤에서 전경들이 시위대를 밀어부치기 시작했다. 모두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고 있었다. 내가 도망치는 뒤쪽에는 비명소리와 욕설, 둔탁한 타격음이 뒤섞여 이게 지금 현실인지 헷갈릴 정도로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 순간, 다쳐있던 발목 쪽인 왼발을 힘껏 밟히고 말았다. 워낙 흥분해있어서 통증도 모르다가, 인도로 밀려나서 앉아 쉬다보니 서서히 통증이 오면서 발목이 붓기 시작했다. 앞쪽에서는 시위대를 밀어부치는 전경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고, 고함소리로 짐작하건대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일단 의료봉사단을 찾았다. 하지만 진압이 시작되서 그분들도 정신이 없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시더니 이내 실신한 여자분들을 등에 업어매고 뛰어오셨다. 이건 전쟁이었다. 좀 있으니 얼굴을 가격당해 마치 격투경기를 마친듯한 얼굴을 한 남자분들이 봉사단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의사분은 발목을 이리저리 살피시더니 뼈에 이상은 없고 단순 염좌인 것 같다고 하셨다. 하지만 긴장이 풀리면 다시 아파지고 훨씬 더 부을테니 앉아 쉬면서 약을 몇 번 바르자고 하셨다. 나는 아비규환을 앞에 두고 앉아 쉬었다. 그 순간, 한 남자가 얼굴이 피로 물들은 채 걸어왔다. 얼굴이 방패에 찍혔는지 얼굴이 찢어져 있었고,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또 어떤 중년의 남성분은 머리를 맞아 뇌진탕 증세가 있으신 것 같았다. 내 옆에 앉으셨는데, 계속 구토할 것 같다고 하셨고, 의료봉사하시는 분들은 급히 구급차를 부르셨다. 저멀리, 여전히 전경들은 뭔가 움직임이 많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인도로 시위대를 밀어내고 도로를 장악한 전경들>
6. 6월 2일 02시 30분
억울했다. 언론에 나오는 이야기로는 이명박이 진작 물러났어야 했다. 그 끓어오르는 분노를 시민들은 평화적으로 외칠 뿐이었다. 하지만 공권력은 이를 비겁하게 짓뭉게버렸다. 오랜시간 서있었데다가 발목이 부어오르는 탓에 나는 치를 떨면서 집으로 돌아가길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 친구에게 택시비를 빌려서,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창문밖으로 들리는 구호소리는 내 마음을 한없이 힘들게 하였다. 아까 만난 할아버지는 어떻게 됐는지, 실신했던 여자분들은 의식이 돌아왔는지, 이명박 개자식은 이걸 보기나 한건지 하여튼 만감이 교차하였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마냥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이 길고 긴 밤에 느낀 오만가지 감정은 담배를 불렀고, 연신 세 개피를 피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놀란 눈으로 동생은 나를 맞았고, 뉴스를 본 동생이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 답해주었다.
이명박은 물러가라!
평화시위 보장하라!
폭력경찰 물러나라!
연행자를 석방하라!
우리앞길 막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