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외국어고 개선안(정부안) 정리 시사비평

26일 교육과학기술부가 ‘외고 제도개선 시안’을 발표했다.

제1안외고를 지금처럼 특수목적고로 유지하되, 설립 목적인 외국어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학급당 학생 수와 학급 수 등을 과학고 수준으로 줄이는 방안이다. 현재 학급당 학생 수가 36.5명인 외고의 학생 수를 20.9명(과학고) 수준으로 줄이고, 평균 850여명인 외고 한 곳당 학생 수도 5분의 1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학생 수 감축 등의 조건을 따르지 않으려면 자율형사립고·자율형공립고·국제고·일반계고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전환해야 한다.

제2안외고를 아예 폐지한 뒤, 1안과 마찬가지로 자율형사립고 등 네 유형의 학교 가운데 하나로 전환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하면 평준화 지역에선 내신성적이 상위 50% 안에 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비평준화 지역에서는 학교가 정한 선발 기준에 따라 학과별로 학생을 뽑게 된다. 국제고로 전환할 경우에는 현재 외고와 마찬가지로 내신·추천서·면접 등 학교가 정한 방법에 따라 학과별로 선발하도록 했다.

출처 : 민주시민언론연합 주요일간지 일일 모니터 브리핑(11/27)

박정희 전대통령 친일논란 시사비평

  지난 8일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박정희 전대통령(이하 박정희)이 실린 반면, 어제 국가기관인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이하 반민규명위)가 발표한 보고서에는 제외되었다.  우선 문제가 된 박정희의 행적을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박정희는 일본육군사관학교 본과에 지원해 만주군 소위에 임관하였다.  그런데 그는 사관학교에 지원하면서 혈서로 '한 번 죽음으로서 나라에 충성함 박정희'라는 것을 작성하였고 동봉한 편지에는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 견마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는 내용이 있다.(출처는 1939년 만주신문 기사 '혈서 군관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로부터'로 민족문제연구소의 근거가 되는 자료이다.  그간 인터넷 공간에서 이 자료가 조작되었다는 둥 말들이 많았다.  참고로 MBC 100분토론 친일인명사전 편에 출연한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 저자인 주익종씨는 이 자료 내용이 조작되었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정을 반민규명위에서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를 명단에서 제외한 이유는 오늘자 한겨레신문 기사 '1005명 대 4389명, 왜?'에 잘 나와 있다.  기사 한 대목을 인용하자면 반민규명위가 '만주지역의 '간도특설대'(항일독립군 탄압부대)와 만주국군 8단과 관련한 행위를 입증할 공문서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즉 민족문제연구소는 항일부대를 박멸하는 곳에 지원하고 지위를 획득한 것 자체로 친일인명사전에 박정희를 등재한 반면 반민규명위는 실제 박멸'행위'를 입증할 공문서가 없기에 보고서에서 제외했다는 것이다.  조금 덧붙이자면, 민족문제연구소는 박정희가 만주군에 지원한 시기를 주목했다.  즉 1939년부터 1941년까지는 관동군과 만주군이 합동으로  이른바'진드기 작전'을 행한 시기로  이것은 그 지억에 최후로 남은 천명 가까운 항일부대를 섬멸하던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정황으로 행위에 대한 규명은 이루어졌다고 본 것 같다.  어느 측이 더 타당한가는 차치하고서라도 박정희가 충성혈서를 쓰고 만주군에 지원하여 활동했다는 사실은 학자들로 구성된 민간단체와 국기기관에 의해 규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친일행적에 대하여 보수진영에서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와 흥미롭다.  관련해서 위에서 잠깐 언급한 100분토론에서 나온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조금 추려 소개하면서 글을 마무리짓고자 한다.  우선 뉴라이트인 주익종씨는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의 인터뷰를 근거로 하여 '박정희가 군에 지원하던 당시 나이가 23세로, 교직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군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방법을 찾던 중 혈서를 생각했다.  당시 일본육사에 지원하기 위한 나이 제한을 넘었었기 때문에, 꼭 뽑아달라는 취지로 혈서를 쓰자는 대안을 생각한 것이다.'고 말했다.  또 '당시 최고의 군사교육기관인 곳에서 교육받아 군인이 되고싶다는 꿈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종의 쇼를 한 것이다'라고도 말했다.  이에 대해 반대패널들은 '만주군이 뭐하는 곳인지는 알고 있느냐', '광복군은 혈서 없이도 지원해 군인이 될 수 있다', '대단히 편향되었다고 평가받는 조갑제씨의 인터뷰 내용은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객관적 팩트에 의해 규명된 것들은 애써 의미를 축소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질타를 쏟아내었다.  한편 다른 패널은 '춘원 이광수가 말했던 민족을 위한 친일의 일원으로 볼 수 있지 않겠느냐'(조갑제씨는 같은 맥락으로 '박정희, 신현확 같은 분들은 일제에 순응하는 척 하면서 실력을 길러 대한민국 발전에 이바지하였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고 하자 주익종씨는 이러한 시각 역시 인정하지 않으면서 '당시 독립에 대한 비전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교사 생활이 맞지 않아 원래 꿈인 군인이 되겠다는 일념에서 한 행동일 뿐'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하였다.




고려대 교내 김성수 동상 철거 논의해야 시사비평

  지난 8일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인촌 김성수가 포함된 데 이어 오늘 국가기관인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이하 친일진상규명위)가 발표한 친일 인사 명단에도 그 이름이 올라왔다.  친일진상규명위는 2004년 '일제강점하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이 여야 합의에 의해 통과됨에 따라 발족된 국가기관이다.  따라서 이 기관이 발표한 명단에 인촌 김성수가 포함되었다는 것은 그가 '국가공인 친일인사'라는 점을 시사한다.  게다가 이번 명단은 민간단체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숫자의 1/4 수준이고, 여야 합의로 만들어진 친일진상규명위의 태생적 속성상 의견이 엇갈리는 자들은 제외될 수 밖에 없었을 것임을 감안하면 엄격한 기준으로 선정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여기에 김성수가 포함된 것이다.

  그런데 고려대학교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본관 앞 잔디에는 김성수의 동상이 서 있다.  동상이 만들어진 시기는 1950년대 말이고, 동문들이 주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를 기념하는 '인촌기념관'이라고 명명된 대강당까지 있다.  국가가 공인한 친일인사를 사회적 양심의 보루인 대학이 기념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일까.  인촌 김성수는 '민족고대'의 상징으로 여겨져왔다.  게다가 학교를 다니거나 다녔던 이들까지 그를 고려대학교 설립자로 오해할 만큼 위상이 높다.  (그는 고려대학교 전신인 보성전문학교 교장에 취임한 적이 있을 뿐, 설립자는 이용익이다)  

  하지만 일제의 전쟁동원이 가열차게 진행되던 1930년대 말,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이라는 친일단체의 이사로 활동하고, 광복 직전 무렵에는 교장 재직 당시 학생들에게 징병에 나갈 것을 선동하였다는 일화까지 회자된 그다.  이번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현황을 보면,

-징병 찬양 및 선전ㆍ선동, 학병 동원 독려
-흥아보국단 준비위원,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ㆍ감사, 시국인식의 철저 역설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인ㆍ이사ㆍ참사,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ㆍ훈련부 이사

  이러한 사항은 위 특별법 제 2조 11호 '학병·지원병·징병 또는 징용을 전국적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선전 또는 선동하거나 강요한 행위', 13호 '사회·문화 기관이나 단체를 통하여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을 적극 주도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17호 '일본제국주의의 통치기구의 주요 외곽단체의 장 또는 간부로서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에 해당된다고 한다.

  과연 민족고대의 상징으로 적절한 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 국가가 그를 서훈취소대상으로 삼았던 적이 있었고, 오늘에 이르러 친일인사로 공인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간 김성수 동상에 대해 학내에서 전혀 문제제기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2005년 총학에서 친일교수명단을 발표하면서 동상 철거문제를 제안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친일진상규명위의 이번 발표를 계기로 다시 한 번 교내에서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있기를 바란다.  나아가 4.19 혁명의 초탄이었던 과거의 영광과 지금의 현재가 서로 손을 맞잡을 수 있도록 철저한 자기반성을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친일진상규명위의 초대 위원장인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출범 당시 말했던 '옳고 그름의 기준이 바로 서지 못하면 또 다시 매국노가 탄생할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학교당국이 먼저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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