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차 렛츠리뷰에서 시사IN 102호(이하 '본지')에 당첨되었다. 받아보니 김대중 전대통령 추모특집호였다. 목차를 쭉 훑어보니 이번 호는 전체가 김대중 전대통령에 관한 글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한 가지 주제만을 다루는 컨텐츠는 리뷰하기에는 조금 수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있었지만, 다 읽고 나니 역시 시사IN의 탁월한 취재능력과 다각적인 접근방법에 그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다고 이내 느꼈다.
본지에서 특별히 인상깊었거나 새로 알게된 사실들을 몇 가지 추려보고자 한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작심한듯 '민주주의, 서민경제, 대북문제' 3대 위기를 거론하며 정치적 발언을 올해 초부터 거듭했던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노무현 전대통령이 서거하기 전 그와 함께 지난 8월 15일에 공동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었음을 새로 알게 되었다(본지 37면). 공동기자회견이 가지고 올 정치적 파장은 엄청날 것이었다. 이해찬 전 총리가 김 전대통령의 이러한 뜻을 전하기 위해 직접 봉하마을로 갔으나, 당시엔 검찰조사로 정신이 없던 터라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실패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노무현 전대통령이 투신하기에 이르렀으니, 영결식장에서 '내 몸 반이 무너진 것 같다'며 서럽게 우는 김대중 전대통령의 모습이 이해가 갔다.
또한 얼마 전 클린턴이 대북특사로 가게된 비화에 김대중 전대통령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다는 것(본지 38면)과 미국정치계가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하다 결국 대북문제의 국면전환을 이끌어내기에 이르렀다는 것을 주목할 만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 김대중 전대통령을 찾아가 대북문제에 관한 조언을 들을 때에 햇볕정책을에 관해 설명받고는 '제 생각과 똑같습니다'며 고개를 다섯번이나 끄덕였다는 이야기(본지 37면, 44면)를 처음 알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막상 집권하면 대북정책에 관해서는 유연한 태도를 보여주리라 생각했다고 하는데, 6자회담의 기본정신을 잊고 '비핵-개방-3000'이라는 강경정책을 고집하는 것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정치적 스탠스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지는 각자마다 견해가 조금씩 다를 것이다. 본인 스스로가 진보진영이라고 자처하기도 하였고 민주당 또한 그러했으나 대개 민노당이나 진보신당 지지자들 혹은 학자들로부터는 '착한 신자유주의자'로 분류되거나 중도우파 정도로 평가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본지 57면 홍기빈씨의 칼럼내용처럼 김대중 전대통령은 진보와 보수 양쪽에 심한 반감을 만들어냈고 정치적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과거 에두아르드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 노선이 막시스트들의 맹렬한 비난을 산 것과 비슷하게 그는 진보진영으로부터 '한국 자본주의 체제의 안전판'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보수진영으로부터는 '빨갱이', '대통령병 환자' 등으로 매도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위 칼럼에서 홍기빈씨가 지적하듯 한국의 보수와 진보 진영은 지금까지 직접 맞부딪히기보다는 김대중 전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중도노선을 각자의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 서로 성장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정국 당시에도 민노당이나 진보신당 지지자들은 자신과 김대중 전대통령과의 차별점을 부각시키느라 바빴고 좀 심한 이들은 추모 자체를 거부하기도 했다(보수진영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본다면 김대중 전대통령의 40년 정치역정은 대한민국 정치를 풍성하게 자라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보수진영의 햇볕정책에 관한 뿌리깊은 매도를 반박한 대표적인 김대중 전대통령의 발언을 소개(본지 41면)하는 것으로 리뷰를 마칠까 한다. 첫째로 햇볕정책과 남북정상회담이 북한의 핵개발을 불러오지 않았냐는 문제제기에 그는 '제가 북한을 방문한 것은 2000년 6월입니다. 북한의 핵문제는 1993년부터 시작하여 1994년 본격적으로 국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핵문제와 저의 북한 방문과는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고 답했다. 둘째로 이른바 '퍼주기 논란'에 대해 그는 '독일은 20년 동안 평균 32억달러를 매년 지원했습니다. 우리는 13년 동안 매년 1억5000만 달러를 줬습니다. 1인당 연 5000원으로 북한을 도운 셈입니다. 그 대가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냉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화해협력의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고 답했다.
필자 또한 진보진영에 서서 김대중 전대통령의 정치에 많은 비판점을 가지고 있던 터라 마음을 열고 김대중의 역정에 대해 찬찬히 곱씹을 기회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고 옹졸한 마음으로 성급히 그를 단정짓는 경우가 더러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 시사IN 102호가 자아성찰과 함께 좀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본지에서 특별히 인상깊었거나 새로 알게된 사실들을 몇 가지 추려보고자 한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작심한듯 '민주주의, 서민경제, 대북문제' 3대 위기를 거론하며 정치적 발언을 올해 초부터 거듭했던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노무현 전대통령이 서거하기 전 그와 함께 지난 8월 15일에 공동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었음을 새로 알게 되었다(본지 37면). 공동기자회견이 가지고 올 정치적 파장은 엄청날 것이었다. 이해찬 전 총리가 김 전대통령의 이러한 뜻을 전하기 위해 직접 봉하마을로 갔으나, 당시엔 검찰조사로 정신이 없던 터라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실패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노무현 전대통령이 투신하기에 이르렀으니, 영결식장에서 '내 몸 반이 무너진 것 같다'며 서럽게 우는 김대중 전대통령의 모습이 이해가 갔다.
또한 얼마 전 클린턴이 대북특사로 가게된 비화에 김대중 전대통령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다는 것(본지 38면)과 미국정치계가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하다 결국 대북문제의 국면전환을 이끌어내기에 이르렀다는 것을 주목할 만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 김대중 전대통령을 찾아가 대북문제에 관한 조언을 들을 때에 햇볕정책을에 관해 설명받고는 '제 생각과 똑같습니다'며 고개를 다섯번이나 끄덕였다는 이야기(본지 37면, 44면)를 처음 알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막상 집권하면 대북정책에 관해서는 유연한 태도를 보여주리라 생각했다고 하는데, 6자회담의 기본정신을 잊고 '비핵-개방-3000'이라는 강경정책을 고집하는 것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정치적 스탠스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지는 각자마다 견해가 조금씩 다를 것이다. 본인 스스로가 진보진영이라고 자처하기도 하였고 민주당 또한 그러했으나 대개 민노당이나 진보신당 지지자들 혹은 학자들로부터는 '착한 신자유주의자'로 분류되거나 중도우파 정도로 평가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본지 57면 홍기빈씨의 칼럼내용처럼 김대중 전대통령은 진보와 보수 양쪽에 심한 반감을 만들어냈고 정치적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과거 에두아르드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 노선이 막시스트들의 맹렬한 비난을 산 것과 비슷하게 그는 진보진영으로부터 '한국 자본주의 체제의 안전판'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보수진영으로부터는 '빨갱이', '대통령병 환자' 등으로 매도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위 칼럼에서 홍기빈씨가 지적하듯 한국의 보수와 진보 진영은 지금까지 직접 맞부딪히기보다는 김대중 전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중도노선을 각자의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 서로 성장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정국 당시에도 민노당이나 진보신당 지지자들은 자신과 김대중 전대통령과의 차별점을 부각시키느라 바빴고 좀 심한 이들은 추모 자체를 거부하기도 했다(보수진영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본다면 김대중 전대통령의 40년 정치역정은 대한민국 정치를 풍성하게 자라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보수진영의 햇볕정책에 관한 뿌리깊은 매도를 반박한 대표적인 김대중 전대통령의 발언을 소개(본지 41면)하는 것으로 리뷰를 마칠까 한다. 첫째로 햇볕정책과 남북정상회담이 북한의 핵개발을 불러오지 않았냐는 문제제기에 그는 '제가 북한을 방문한 것은 2000년 6월입니다. 북한의 핵문제는 1993년부터 시작하여 1994년 본격적으로 국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핵문제와 저의 북한 방문과는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고 답했다. 둘째로 이른바 '퍼주기 논란'에 대해 그는 '독일은 20년 동안 평균 32억달러를 매년 지원했습니다. 우리는 13년 동안 매년 1억5000만 달러를 줬습니다. 1인당 연 5000원으로 북한을 도운 셈입니다. 그 대가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냉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화해협력의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고 답했다.
필자 또한 진보진영에 서서 김대중 전대통령의 정치에 많은 비판점을 가지고 있던 터라 마음을 열고 김대중의 역정에 대해 찬찬히 곱씹을 기회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고 옹졸한 마음으로 성급히 그를 단정짓는 경우가 더러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 시사IN 102호가 자아성찰과 함께 좀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덧글
민근 2009/09/09 15:23 # 답글
난입후에 읽는 시사인. ㅋㅋ강수영 2009/09/11 04:06 #
ㅋㅋㅋㅋ가브리엘 2009/09/10 23:53 # 답글
두 분이서 기자회견을 하려고 했다는 것은 새로 알게 된 사실이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강수영 2009/09/11 04:07 #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