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견해와 자기이해관계의 모순 정치논박

  주변 지인분들과 나는 (국내 정당들이 각자 어떤 특정 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왜 사람들은 자기이해관계와 상반되는 정당을 지지하는 오류(?)를 범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예컨대 '세입자가 80%를 차지하는 어떤 지역구에서 왜 뉴타운 재개발공약을 내세우는 정당의 후보가 당선되는가'류의 의문들이었다.  재개발이 된다면 세입자들은 쫓겨날 운명에 처하게 된다.  재개발을 하면 수십년동안 토착민을 다시 뉴타운으로 정착시키기위해 노력하는 영국모델과는 다르게 속성 재개발을 추구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춰봤을 때, 세입자의 지위는 매우 열악하다.  그런데도 뉴타운 공약을 내세우는 정당을 지지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이와 관련해 미국에선 언어학적으로 접근하여 '프레임론'을 주창한 조지 레이코프가 유명해지기도 했다.  투박하게 요약하자면 정치권의 말장난 때문에(현 정권의 '녹색성장'을 그 예로 꼽는 이들이 있다) 일반 대중들이 정치사안에 대해 잘못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레이코프의 주장만으로는 영 성에 차지 않는다.

  사실 저런 넋두리 아닌 넋두리는 진보진영에서 자주 토로되곤 했다.  수십년간 자민당이 독주해왔던 일본보다도 훨씬 보수일색인 우리 정치현실에서 진보진영의 지지기반이라고 간주되던 서민들(서민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진 않지만 마땅히 대체할 개념이 떠오르지 않는다)이 자신들을 지지해주지 않는 현실이 미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의문제기는 위험하게도 '아직도 사람들이 뭘 몰라서 그래', '속고있는거야' 등의 계몽주의적 태도로 쉽게 이어져왔다.  다시 말해 '저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자해행위입니다' 라는 진실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만 있다면 해결될 문제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지금도 횡행하고 있는 이러한 진보진영의 태도는 완전히 그릇된 것은 아닐 수도 있지만, 일반 대중들로 하여금 진보진영을 독선적이고 자기논리에 함몰되어서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것은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386세대나 근래 대학 내에서의 운동권들의 몰락의 큰 이유 중 하나로 꼽아도 무방할 듯 싶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반드시 진보진영에서만 저러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아니다.  '사지 멀쩡한 놈이 왜 장애인정책에 대해 그리 관심이 많냐? 너랑 무슨 상관이냐?', '멀쩡히 고추 달린 놈이 왜 페미니즘 책 따위 읽고 있냐? 너랑 무슨 상관이냐?', '국가고시 준비하는 녀석이 왜 비정규직 문제에 핏대를 올리냐? 니가 정규직되면 되지 무슨 상관이냐?' 등의 제법 현실적으로 들리는 일갈들.  심지어는 '좋은 대학 다니는 놈들이 어줍잖게 노동문제 교육문제 왈가왈부하는게 답답하다.  사회생활도 안해본 상아탑 갖힌 애들이 뭘 알겠냐'와 같은 진보진영 내에서의 자폭도 종종 눈에 띈다.

  이와 같이 정치적 견해와 자기의 이해관계의 불일치는 정견의 좌우를 불문하고 무수히 많다.  언뜻 이것은 자기배신행위로 여겨지기에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동물과는 달리 미래와 과거를 통시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영장류인 우리 인간은 현재의 처지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지금 현재는 내가 비록 세입자 신세라도, 내 집을 가지고 더 나아가 여러개의 아파트를 가지고 임대사업을 굴리는 상위 1%가 '언젠가는 되었으면 좋겠고 될 수 있을 것 같기에, 그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기에' 미래의 자기 이상향을 지금의 자기 정체성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세입자들도 보수적인 부동산 정책을 지지할 수 있다.  즉 사람이라면 누구나 각자의  가치관이 있고 그에 따른 자기 미래상을 그리게 마련이므로, 정치적 견해는 현재의 자기이해관계와 모순될지 몰라도 미래상과 언제나 일치한다.  

  결국 서민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것을 그들의 무지함 때문이라고 여기는 것은 크나큰 오류다.  각자 출신배경과 현재처지가 달라도 '어떻게 하면 내가 나중에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이 같으면 같은 정치적 견해를 표방한다.  따라서 정치현실의 보수편중을 이야기하려면 1등주의 엘리트교육에서 비롯된 획일적 행복관, 물신주의가 투영된 결과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차라리 솔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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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좌파논객 2009/11/07 22:51 # 답글

    탁월한 견해이십니다~d
  • 강수영 2009/11/08 14:26 #

    감사합니다 ^^
  • 드래곤워커 2009/11/07 23:26 # 답글

    옳으신 말씀입니다.
  • 강수영 2009/11/08 14:26 #

    감사합니다 ^^
  • ㅇㅇ 2009/11/07 23:27 # 삭제 답글

    공감합니다. 합당한 설득보단 계몽운동을 펼치려 하니 서민들이 더욱 거부감을 가질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구조를 깨트리는게 너무 어려운것 같아요... 진보의 보수화도 종종 보이고...
  • 강수영 2009/11/08 14:28 #

    계몽의 필요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것에만 매달리다보면 독선에 빠지기 쉽상이지요.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할 지 고민을 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언럭키즈 2009/11/08 12:49 # 답글

    이 관점을 잘 보여주는 케이스가 오바마vs맥케인 대선 때 등장한 인물인 '배관공 조'이야기죠.
    "지금 내가 근무하는 배관 회사를 내가 인수하게 되면, 내 연봉이 25만 불에서 28만 불 정도 될 텐데, 그럼 오바마 너의 세금 정책에 따르면 난 지금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되는 거 아니냐."
    http://crete.pe.kr/5379
    http://capcold.net/blog/1940
  • 강수영 2009/11/08 14:29 #

    좋은 자료 감사드립니다 ^^
    잘 지내고 계시죠?
  • 타누키 2009/11/08 14:09 # 답글

    잘봤습니다~
  • 강수영 2009/11/08 14:29 #

    감사합니다 ^^
  • KayC 2009/11/18 16:52 # 삭제 답글

    전체적인 논지는 동의하는데 다만 자기가 미래에 소위 '상위 1%'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보수정당이 그리는 사회질서가 자신이 생각하는 '옳은' 질서기 때문에 지지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 내 생각엔 현재 세입자인 사람들이 보다 더 나은 자신의 미래를 꿈꾸더라도 여러개의 아파트를 가지고 임대사업을 하는 수준까지 상상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을 것 같거든. 사람이 꼭 어느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데 있어 자기 이익만을 고려하는 것 같지는 않기도 하고. 사람은 신념을 가진 동물이니까.
  • 강수영 2009/11/27 23:18 #

    그 부분을 너무 글자 그대로 읽어준걸까, 혹은 내가 표현을 잘못한 걸까..ㅠ

    본문중에
    '누구나 각자의 가치관이 있고 그에 따른 자기 미래상을 그리게 마련이므로, 정치적 견해는 현재의 자기이해관계와 모순될지 몰라도 미래상과 언제나 일치한다.'
    이 문장에 니가 말한 뜻이 담겨있다고 생각하면 무리일까.
    쩝. 어쨌든 난 너와 같은 생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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